소설 석불사
- 소설 개요
- 등장인물 소개
- 제 1장
- 제 2장
- 제 3장
- 제 4장
- 제 5장
- 제 6장
- 제 7장
- 제 8장
- 제 9장
- 제 10장
- 제 11장
- 제 12장
- 에필로그
소설 석불사는 역사와 픽션이 결합된 형태의 이야기입니다.
현재 주지 스님이신 일호스님의 젊었을때 경험했던 사건들과
역사적 자료들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고서에 따르면 신라시대 의상대사는 전국을 돌며
많은 사찰을 건립하신 것으로 유명하시고,
의성군에도 머물다 가면서 많은 사찰과 사적지가 있습니다.
본 소설의 이야기는 이러한 과거와 현재를 잇는 내용으로
석불사 같은 암굴사찰은 스스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본찰에서
지원하는 수행 목적의 장소가 많아서 그 기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선전기 지리지 “신동국여지승람”에 짧게 나와있는
의성 비안 봉미산에 미흘사의 흔적에 주지 스님이 관심을 가지시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법당굴에는 고려시대 석조여래좌상이 안치되어 있으며,
긴 시간 만큼 많은 역사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사찰입니다.
본 소설은 불교에 대한 이해와 석불사에 대한 이해를 위해 작성되었으며,
일부 실제 역사와 다를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소설 석불사》 주요 등장인물 소개
🧘혜원 스님 (가칭, 본명: 이월향)
– 역할: 소설의 주인공. 현재 석불사의 주지 비구니.
– 나이: 50대 초반
– 배경: 서울에서 기자로 활동하다 인생의 공허함을 느끼고 출가. 수행 중 석불사의 역사에 매료되어 자락리에 정착.
– 성격: 조용하지만 내면은 강인. 사람들을 위로하는 힘이 있음.
🧓노보살 ‘장씨 할머니’
– 역할: 마을의 산 증인. 6·25와 탑 이전의 전설을 기억함.
– 나이: 90대
– 배경: 자락리 토박이. 석불사를 지켜온 가문 출신.
– 성격: 고집 세고 솔직하지만 정이 많음.
🧑진아
– 역할: 중학생 소녀. 혜원 스님에게 수행을 배우며 역사를 접하게 됨.
– 나이: 15세
– 배경: 부모와 서울에서 이사 온 아이. 학교 부적응 중 우연히 석불사를 찾게 됨.
– 성격: 호기심 많고 감수성 풍부. 점차 성장해 석불사의 가치를 이어받음.
🧙의상대사
– 역할: 과거 회상 장면에서 등장. 미흘사 창건 전설의 중심 인물.
– 시대: 통일신라 시대
– 성격: 온화하고 총명. 인연의 법칙을 중시함.
🧓김보진
– 역할: 일제강점기 말기~해방 전후의 마을 유지
– 시대: 1930~1950년대
– 성격: 책임감 강하고 지역을 위하는 인물. 지혜로운 장년층의 상징.
🧑고문서 전문가 ‘박재한’
– 역할: 혜원 스님의 오랜 지인. 고지도, 『여지승람』, 문화재 조사를 도와주는 인물.
– 나이: 40대
– 배경: 서울의 박물관 학예사. 석불사에 얽힌 진실을 함께 파헤침.
🧍이경식
– 역할: 도난된 문화재 복원을 돕고자 하는 젊은 문화유산운동가
– 나이: 30대
– 배경: 의성 출신. 문화재 도난의 충격을 극복하고 싶어 활동 중.
🧘혜원 스님 (가칭, 본명: 이월향)
– 역할: 소설의 주인공. 현재 석불사의 주지 비구니.
– 나이: 50대 초반
– 배경: 서울에서 기자로 활동하다 인생의 공허함을 느끼고 출가. 수행 중 석불사의 역사에 매료되어 자락리에 정착.
– 성격: 조용하지만 내면은 강인. 사람들을 위로하는 힘이 있음.
🧓노보살 ‘장씨 할머니’
– 역할: 마을의 산 증인. 6·25와 탑 이전의 전설을 기억함.
– 나이: 90대
– 배경: 자락리 토박이. 석불사를 지켜온 가문 출신.
– 성격: 고집 세고 솔직하지만 정이 많음.
🧑진아
– 역할: 중학생 소녀. 혜원 스님에게 수행을 배우며 역사를 접하게 됨.
– 나이: 15세
– 배경: 부모와 서울에서 이사 온 아이. 학교 부적응 중 우연히 석불사를 찾게 됨.
– 성격: 호기심 많고 감수성 풍부. 점차 성장해 석불사의 가치를 이어받음.
🧙의상대사
– 역할: 과거 회상 장면에서 등장. 미흘사 창건 전설의 중심 인물.
– 시대: 통일신라 시대
– 성격: 온화하고 총명. 인연의 법칙을 중시함.
🧓김보진
– 역할: 일제강점기 말기~해방 전후의 마을 유지
– 시대: 1930~1950년대
– 성격: 책임감 강하고 지역을 위하는 인물. 지혜로운 장년층의 상징.
🧑고문서 전문가 ‘박재한’
– 역할: 혜원 스님의 오랜 지인. 고지도, 『여지승람』, 문화재 조사를 도와주는 인물.
– 나이: 40대
– 배경: 서울의 박물관 학예사. 석불사에 얽힌 진실을 함께 파헤침.
🧍이경식
– 역할: 도난된 문화재 복원을 돕고자 하는 젊은 문화유산운동가
– 나이: 30대
– 배경: 의성 출신. 문화재 도난의 충격을 극복하고 싶어 활동 중.
제1장. 바위산의 속삭임
해망산에 봄이 스며들기 시작할 무렵, 자락길엔 안개가 얇게 깔렸다.
새벽의 공기는 조용했으나 어딘가 축축했고, 바위 틈을 타고 내려온 물방울이 굴 아래 흙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 소리는 마치 누군가 오래된 불경을 낮게 읊조리는 것처럼 들렸다.
자연석으로 다듬어진 좁은 길을 따라 올라가면, 동쪽 절벽 허리에 박힌 작은 석굴이 나온다.
그 안에는 높이 1.2미터 남짓의 석불 좌상이 말없이 앉아 있다.
입가에는 아주 희미한 미소가 남아 있고, 닳아 없어진 눈동자는 정면도 아닌, 살짝 아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 불상이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보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석굴 앞, 혜원 스님이 앉아 있었다.
얇은 회색 법복 위로 아침 안개가 흠뻑 젖어들었지만, 그녀는 꼼짝하지 않았다.
목에 걸린 염주가 이따금 미세하게 흔들릴 뿐이었다.
> “부처님, 오늘도 이 땅을 지켜주십시오.
> 어제 찾아왔던 그 아이…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거의 기도에 가까웠고, 석불의 침묵은 마치 그 말에 응답하는 것 같았다.
진아.
그 소녀는 어제 이곳에 처음 발을 들였다.
등굣길에 친구들과 다퉜고, 도망치듯 산을 올라와 길을 잃은 아이였다.
법당굴 앞에서 쓰러질 듯 주저앉아 울고 있었고,
혜원 스님은 다가가 따뜻한 유자차 한 잔을 건넸다.
그 단순한 온기에, 소녀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 울음 속에는 분노도, 슬픔도, 외로움도 모두 섞여 있었다.
그날 밤, 혜원은 오래도록 불을 끄지 못했다.
서울에서 기자로 일하던 시절.
혜원은 전쟁터를 다녔고, 잿빛 도시를 찍었고,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을 수없이 기록했다.
그러나 어느 날, 더 이상 그 렌즈 안에 의미를 찾지 못했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내가 가진 마음 하나쯤은, 어딘가에 걸어두고 싶었다.”
그런 그녀가 방랑 끝에 도달한 곳이 바로 자락리, 그리고 이 작은 석굴이었다.
첫날 석굴에 들어섰을 때, 마치 오래전부터 누군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돌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침묵 자체가 “여기 머물러도 좋다”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이튿날 아침.
진아는 다시 석불사에 나타났다.
“다시는 안 올 줄 알았는데…”
“모두들 그렇게 말한단다. 두 번째부터는 발걸음이 더 가벼워지지.”
혜원은 따뜻하게 웃으며 차를 따랐다.
진아는 굴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부처님 앞에 앉아 있는 것이 어색해 보였지만, 그녀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 “스님, 이 부처님은… 왜 말이 없어요?”
> “그건, 우리가 먼저 말을 꺼내게 하기 위해서지.”
진아는 무릎을 당기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 “학교보다 여기 있는 게 나은 것 같아요. 이상하죠?”
그 순간, 혜원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밤이 깊었다.
굴 앞의 촛불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 불빛은 굴의 안쪽을 부드럽게 비추고 있었고,
마치 오래전 이곳에서 누군가 기도하며 남겼을 숨결의 흔적이 바람에 실려 오는 것 같았다.
그날 밤, 혜원은 꿈을 꿨다.
안개 낀 봉우리 위를 걷는 자신,
그리고 멀리서 다가오는 한 스님의 형상.
흰 옷자락이 나풀거렸고, 검은 머리카락을 단정히 묶은 그는 다정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 “당신이… 의상대사님인가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탑은 사라질 수 있어도,
> 그 자리를 기억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소.”
그 말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혜원은 천천히 깨어났다.
굴 안에는 여전히 부처님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침묵은 어쩐지 조금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해망산에 봄이 스며들기 시작할 무렵, 자락길엔 안개가 얇게 깔렸다.
새벽의 공기는 조용했으나 어딘가 축축했고, 바위 틈을 타고 내려온 물방울이 굴 아래 흙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 소리는 마치 누군가 오래된 불경을 낮게 읊조리는 것처럼 들렸다.
자연석으로 다듬어진 좁은 길을 따라 올라가면, 동쪽 절벽 허리에 박힌 작은 석굴이 나온다.
그 안에는 높이 1.2미터 남짓의 석불 좌상이 말없이 앉아 있다.
입가에는 아주 희미한 미소가 남아 있고, 닳아 없어진 눈동자는 정면도 아닌, 살짝 아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 불상이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보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석굴 앞, 혜원 스님이 앉아 있었다.
얇은 회색 법복 위로 아침 안개가 흠뻑 젖어들었지만, 그녀는 꼼짝하지 않았다.
목에 걸린 염주가 이따금 미세하게 흔들릴 뿐이었다.
> “부처님, 오늘도 이 땅을 지켜주십시오.
> 어제 찾아왔던 그 아이…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거의 기도에 가까웠고, 석불의 침묵은 마치 그 말에 응답하는 것 같았다.
진아.
그 소녀는 어제 이곳에 처음 발을 들였다.
등굣길에 친구들과 다퉜고, 도망치듯 산을 올라와 길을 잃은 아이였다.
법당굴 앞에서 쓰러질 듯 주저앉아 울고 있었고,
혜원 스님은 다가가 따뜻한 유자차 한 잔을 건넸다.
그 단순한 온기에, 소녀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 울음 속에는 분노도, 슬픔도, 외로움도 모두 섞여 있었다.
그날 밤, 혜원은 오래도록 불을 끄지 못했다.
서울에서 기자로 일하던 시절.
혜원은 전쟁터를 다녔고, 잿빛 도시를 찍었고,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을 수없이 기록했다.
그러나 어느 날, 더 이상 그 렌즈 안에 의미를 찾지 못했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내가 가진 마음 하나쯤은, 어딘가에 걸어두고 싶었다.”
그런 그녀가 방랑 끝에 도달한 곳이 바로 자락리, 그리고 이 작은 석굴이었다.
첫날 석굴에 들어섰을 때, 마치 오래전부터 누군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돌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침묵 자체가 “여기 머물러도 좋다”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이튿날 아침.
진아는 다시 석불사에 나타났다.
“다시는 안 올 줄 알았는데…”
“모두들 그렇게 말한단다. 두 번째부터는 발걸음이 더 가벼워지지.”
혜원은 따뜻하게 웃으며 차를 따랐다.
진아는 굴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부처님 앞에 앉아 있는 것이 어색해 보였지만, 그녀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 “스님, 이 부처님은… 왜 말이 없어요?”
> “그건, 우리가 먼저 말을 꺼내게 하기 위해서지.”
진아는 무릎을 당기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 “학교보다 여기 있는 게 나은 것 같아요. 이상하죠?”
그 순간, 혜원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밤이 깊었다.
굴 앞의 촛불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 불빛은 굴의 안쪽을 부드럽게 비추고 있었고,
마치 오래전 이곳에서 누군가 기도하며 남겼을 숨결의 흔적이 바람에 실려 오는 것 같았다.
그날 밤, 혜원은 꿈을 꿨다.
안개 낀 봉우리 위를 걷는 자신,
그리고 멀리서 다가오는 한 스님의 형상.
흰 옷자락이 나풀거렸고, 검은 머리카락을 단정히 묶은 그는 다정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 “당신이… 의상대사님인가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탑은 사라질 수 있어도,
> 그 자리를 기억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소.”
그 말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혜원은 천천히 깨어났다.
굴 안에는 여전히 부처님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침묵은 어쩐지 조금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제2장. 조문국의 그림자
자락골에 봄이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길가의 버들잎이 연두빛으로 반짝이고, 흙냄새는 더 짙어졌다.
석불사 아래 작은 개울은 눈에 띄게 물이 불어 있었고, 들쭉날쭉한 돌 위로 개구리 울음소리가 번졌다.
그날 아침, 진아는 교과서보다 두껍고 낡은 책을 품에 안고 석불사를 찾았다.
책의 제목은 『삼국사기』였다.
“이거… 학교 도서관에서 빌렸어요. 스님이 말씀하신 조문국, 그거 진짜 나와요!”
혜원은 미소 지으며 책장을 넘겨본다.
노란색 밑줄이 그어진 구절이 그녀의 시선을 멈추게 했다.
> ‘문소군(聞韶郡)은 본래 조문국(召文國)이나, 경덕왕 때 개명하였고…’
> “이 동네에… 나라가 있었단 말이에요?”
> “그래, 아주 오래전 이야기지. 나라 이름은 ‘조문국’. 이 마을, 금성면 근처에 수도가 있었대.”
진아는 책을 꼭 쥐었다.
> “근데… 왜 아무도 몰라요?”
혜원은 석굴 바깥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 “잊히는 건 순식간이야.
> 하지만 사라지는 건… 생각보다 오래 걸려.”
며칠 뒤.
혜원은 박재한에게 부탁해 보내받은 고문서 사본 몇 장을 펼쳐본다.
그 안에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이라는 조선시대의 지리지가 있었다.
> ‘彌屹寺在鳳尾山 — 미흘사는 봉미산에 있다.’
그 짧은 문장이, 혜원에겐 아주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 “봉미산… 이 해망산의 옛 이름이었어.
> 그러니까 미흘사는 실제로 존재했고, 지금 우리가 있는 이 땅 위에 있었던 절이란 뜻이지.”
진아는 숨을 삼켰다.
> “그럼… 이 절은 단순히 지은 게 아니라,
> 옛날부터 여기에 무언가 있었던 자리인 거네요?”
혜원은 고개를 끄덕인다.
> “그 신성한 기억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던 거야.
> 사라진 절터에 다시 누군가 찾아온 것뿐이지.”
그날 오후, 진아는 혜원과 함께 마을회관 뒤편 논길을 걸었다.
논두렁 옆에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좁은 오솔길이 있었다.
길 끝엔 부서진 석재가 몇 개 놓여 있었고, 잡초 속에 파묻힌 기단석 위에는 오래된 나무 한 그루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 “스님, 여기도… 예전엔 절이었어요?”
> “아마도. 탑이 있었다는 얘기도 있어.
> 이 땅은 무너져도 자꾸 절이 생겨나는 땅이야.”
진아는 주변을 둘러보며 속삭인다.
> “사람은 다 죽고 없어도, 부처님은 여전히 여기 계신 것 같아요.”
혜원은 그 말에 조용히 웃었다.
그 웃음엔 경외도, 안도도, 그리고 약간의 슬픔도 함께 담겨 있었다.
밤이 되자, 진아는 석굴 앞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오늘 하루 동안 본 것들을 가만히 떠올렸다.
사라진 나라. 잊힌 절.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기억하려 애쓰는 사람들.
그녀는 부처님 앞에 작은 돌을 하나 올려두며 속삭였다.
> “부처님, 전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
> 이 땅이… 그냥 산이 아니라는 걸요.”
그 말에 굴 안의 바람이 살짝 흔들렸다.
촛불은 조용히 흔들렸고, 석불의 입가에 새긴 미소는 조금 더 깊어진 것처럼 보였다.
[신동국여지승람] 미흘사 기록
자락골에 봄이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길가의 버들잎이 연두빛으로 반짝이고, 흙냄새는 더 짙어졌다.
석불사 아래 작은 개울은 눈에 띄게 물이 불어 있었고, 들쭉날쭉한 돌 위로 개구리 울음소리가 번졌다.
그날 아침, 진아는 교과서보다 두껍고 낡은 책을 품에 안고 석불사를 찾았다.
책의 제목은 『삼국사기』였다.
“이거… 학교 도서관에서 빌렸어요. 스님이 말씀하신 조문국, 그거 진짜 나와요!”
혜원은 미소 지으며 책장을 넘겨본다.
노란색 밑줄이 그어진 구절이 그녀의 시선을 멈추게 했다.
> ‘문소군(聞韶郡)은 본래 조문국(召文國)이나, 경덕왕 때 개명하였고…’
> “이 동네에… 나라가 있었단 말이에요?”
> “그래, 아주 오래전 이야기지. 나라 이름은 ‘조문국’. 이 마을, 금성면 근처에 수도가 있었대.”
진아는 책을 꼭 쥐었다.
> “근데… 왜 아무도 몰라요?”
혜원은 석굴 바깥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 “잊히는 건 순식간이야.
> 하지만 사라지는 건… 생각보다 오래 걸려.”
며칠 뒤.
혜원은 박재한에게 부탁해 보내받은 고문서 사본 몇 장을 펼쳐본다.
그 안에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이라는 조선시대의 지리지가 있었다.
> ‘彌屹寺在鳳尾山 — 미흘사는 봉미산에 있다.’
그 짧은 문장이, 혜원에겐 아주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 “봉미산… 이 해망산의 옛 이름이었어.
> 그러니까 미흘사는 실제로 존재했고, 지금 우리가 있는 이 땅 위에 있었던 절이란 뜻이지.”
진아는 숨을 삼켰다.
> “그럼… 이 절은 단순히 지은 게 아니라,
> 옛날부터 여기에 무언가 있었던 자리인 거네요?”
혜원은 고개를 끄덕인다.
> “그 신성한 기억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던 거야.
> 사라진 절터에 다시 누군가 찾아온 것뿐이지.”
그날 오후, 진아는 혜원과 함께 마을회관 뒤편 논길을 걸었다.
논두렁 옆에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좁은 오솔길이 있었다.
길 끝엔 부서진 석재가 몇 개 놓여 있었고, 잡초 속에 파묻힌 기단석 위에는 오래된 나무 한 그루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 “스님, 여기도… 예전엔 절이었어요?”
> “아마도. 탑이 있었다는 얘기도 있어.
> 이 땅은 무너져도 자꾸 절이 생겨나는 땅이야.”
진아는 주변을 둘러보며 속삭인다.
> “사람은 다 죽고 없어도, 부처님은 여전히 여기 계신 것 같아요.”
혜원은 그 말에 조용히 웃었다.
그 웃음엔 경외도, 안도도, 그리고 약간의 슬픔도 함께 담겨 있었다.
밤이 되자, 진아는 석굴 앞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오늘 하루 동안 본 것들을 가만히 떠올렸다.
사라진 나라. 잊힌 절.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기억하려 애쓰는 사람들.
그녀는 부처님 앞에 작은 돌을 하나 올려두며 속삭였다.
> “부처님, 전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
> 이 땅이… 그냥 산이 아니라는 걸요.”
그 말에 굴 안의 바람이 살짝 흔들렸다.
촛불은 조용히 흔들렸고, 석불의 입가에 새긴 미소는 조금 더 깊어진 것처럼 보였다.


제3장. 의상대사의 꿈
새벽녘.
해망산 중턱, 석굴 안에 촛불 하나가 깜빡이고 있었다.
그 앞에 앉은 혜원은 깊은 명상에 잠겨 있었다.
한 시간도 넘게 앉아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호흡은 고요했고, 그 호흡 속에서 시간은 어느새 뒤로, 아주 먼 시절로 흘러가고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안개가 덮인 산길 위를 누군가 걷고 있었다.
하얀 승복, 검은 머리, 지친 듯하면서도 가볍고 단정한 발걸음.
그는 젊은 승려였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의상.
지금으로부터 1,300년 전.
신라의 학승이던 그는 당나라 유학길을 떠났고, 고행과 수행 끝에 화엄의 도리를 익혔다.
수많은 경전을 외우고도, 그의 눈동자엔 세속을 뛰어넘는 맑음이 머물러 있었다.
> “만물이 하나이며, 하나는 곧 만물이다.”
그 사유의 바탕 위에 그는 결심했다.
나라로 돌아가, 법을 뿌리듯 뿌려야겠다고.
의상은 귀국 후, 부석사를 세웠다.
그리고 어느 날, 안동에서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오던 길.
그는 비안이라는 작은 땅에 닿는다.
산이 겹겹이 이어진 그 고을엔 조용한 기운이 흘렀고, 사람들의 얼굴엔 아직 조문국의 자취가 남아 있었다.
그는 산자락을 돌아보다가 작은 골짜기를 발견한다.
그곳은 봉우리의 끝이 봉황의 꼬리처럼 부드럽게 흐른다 하여 봉미산(鳳尾山)이라 불렸다.
> “이 땅엔 기운이 고인다.
> 언젠가, 먼 훗날 이 자리에 누군가 머물 것이다.”
의상은 그곳에 조그마한 암자를 세웠다.
절 이름은 미흘사(彌屹寺).
‘오래도록 굳건하라’는 뜻이 담긴 이름이었다.
그가 지은 절은 작았다.
그러나 탑이 세워졌고, 미륵불이 놓였고,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는 그곳에서 묵은 밤, 제자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 “이 탑은 완전하지 않다.
> 언젠가 누군가가 이 땅의 기억을 깨우고, 다시 기도할 것이다.”
“스님.”
멀리서 누군가가 부른다.
의상은 돌아보았고,
그 앞에 서 있는 이는 낯선 여승— 혜원이었다.
> “당신이… 의상대사님인가요?”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 “나는 그저, 뿌리를 심었을 뿐.
> 이 땅은 그 뿌리를 기억했고, 그대가 찾아왔을 뿐이라네.”
혜원은 눈을 감는다.
그리고 작게 중얼거린다.
> “제가… 맞는 길을 온 걸까요?”
의상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 “탑은 무너질 수 있다.
> 그러나 그 자리를 기억하는 마음은, 아무도 가져가지 못한다.”
그 말이 끝나자 바람이 불고,
산길의 안개가 한꺼번에 걷힌다.
의상의 형상은 흩어지듯 사라졌고, 그 자리에선 젖은 이끼 향기만이 남았다.
혜원은 눈을 떴다.
촛불은 아직 타오르고 있었다.
굴 안엔 고요함이 감돌았고, 바깥에선 새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진아가 굴 입구에 서 있었다.
양손엔 따뜻한 물병과 수건을 들고.
> “스님… 괜찮으세요?”
혜원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굴 벽에 손을 댄다.
돌은 싸늘했지만, 그녀는 그 안에서 누군가의 체온을 느끼는 듯했다.
며칠 뒤, 진아는 혜원이 건넨 고문서를 다시 읽고 있었다.
> “彌屹寺在鳳尾山… 스님, 이 문장 진짜 멋있어요.”
혜원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 “그 문장이 살아있는 증거야.
> 그 절은 사라졌어도,
> 누군가는 그 문장을 따라 이곳까지 왔으니까.”
진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런 문장이 될 수 있을까요?”
혜원은 진아를 바라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 속엔, 의상이 남기고 간 뜻이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새벽녘.
해망산 중턱, 석굴 안에 촛불 하나가 깜빡이고 있었다.
그 앞에 앉은 혜원은 깊은 명상에 잠겨 있었다.
한 시간도 넘게 앉아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호흡은 고요했고, 그 호흡 속에서 시간은 어느새 뒤로, 아주 먼 시절로 흘러가고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안개가 덮인 산길 위를 누군가 걷고 있었다.
하얀 승복, 검은 머리, 지친 듯하면서도 가볍고 단정한 발걸음.
그는 젊은 승려였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의상.
지금으로부터 1,300년 전.
신라의 학승이던 그는 당나라 유학길을 떠났고, 고행과 수행 끝에 화엄의 도리를 익혔다.
수많은 경전을 외우고도, 그의 눈동자엔 세속을 뛰어넘는 맑음이 머물러 있었다.
> “만물이 하나이며, 하나는 곧 만물이다.”
그 사유의 바탕 위에 그는 결심했다.
나라로 돌아가, 법을 뿌리듯 뿌려야겠다고.
의상은 귀국 후, 부석사를 세웠다.
그리고 어느 날, 안동에서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오던 길.
그는 비안이라는 작은 땅에 닿는다.
산이 겹겹이 이어진 그 고을엔 조용한 기운이 흘렀고, 사람들의 얼굴엔 아직 조문국의 자취가 남아 있었다.
그는 산자락을 돌아보다가 작은 골짜기를 발견한다.
그곳은 봉우리의 끝이 봉황의 꼬리처럼 부드럽게 흐른다 하여 봉미산(鳳尾山)이라 불렸다.
> “이 땅엔 기운이 고인다.
> 언젠가, 먼 훗날 이 자리에 누군가 머물 것이다.”
의상은 그곳에 조그마한 암자를 세웠다.
절 이름은 미흘사(彌屹寺).
‘오래도록 굳건하라’는 뜻이 담긴 이름이었다.
그가 지은 절은 작았다.
그러나 탑이 세워졌고, 미륵불이 놓였고,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는 그곳에서 묵은 밤, 제자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 “이 탑은 완전하지 않다.
> 언젠가 누군가가 이 땅의 기억을 깨우고, 다시 기도할 것이다.”
“스님.”
멀리서 누군가가 부른다.
의상은 돌아보았고,
그 앞에 서 있는 이는 낯선 여승— 혜원이었다.
> “당신이… 의상대사님인가요?”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 “나는 그저, 뿌리를 심었을 뿐.
> 이 땅은 그 뿌리를 기억했고, 그대가 찾아왔을 뿐이라네.”
혜원은 눈을 감는다.
그리고 작게 중얼거린다.
> “제가… 맞는 길을 온 걸까요?”
의상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 “탑은 무너질 수 있다.
> 그러나 그 자리를 기억하는 마음은, 아무도 가져가지 못한다.”
그 말이 끝나자 바람이 불고,
산길의 안개가 한꺼번에 걷힌다.
의상의 형상은 흩어지듯 사라졌고, 그 자리에선 젖은 이끼 향기만이 남았다.
혜원은 눈을 떴다.
촛불은 아직 타오르고 있었다.
굴 안엔 고요함이 감돌았고, 바깥에선 새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진아가 굴 입구에 서 있었다.
양손엔 따뜻한 물병과 수건을 들고.
> “스님… 괜찮으세요?”
혜원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굴 벽에 손을 댄다.
돌은 싸늘했지만, 그녀는 그 안에서 누군가의 체온을 느끼는 듯했다.
며칠 뒤, 진아는 혜원이 건넨 고문서를 다시 읽고 있었다.
> “彌屹寺在鳳尾山… 스님, 이 문장 진짜 멋있어요.”
혜원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 “그 문장이 살아있는 증거야.
> 그 절은 사라졌어도,
> 누군가는 그 문장을 따라 이곳까지 왔으니까.”
진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런 문장이 될 수 있을까요?”
혜원은 진아를 바라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 속엔, 의상이 남기고 간 뜻이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제4장. 석굴의 노래
자락리의 아침은 다른 곳보다 느렸다.
산비탈을 타고 내려온 햇살은 굴 속까지 들어오는 데 시간이 걸렸고,
새소리도, 마을의 움직임도 굴 앞에서는 늘 반 박자 느렸다.
하지만 그날 아침, 진아는 일찍 도착해 있었다.
그녀는 작은 등산배낭에서 색연필과 스케치북을 꺼냈고,
굴 입구에 엎드리듯 앉아 조심스레 불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법당굴 안에는 오직 하나의 좌불이 있었다.
묵언한 채 앉아 있는 불상은 세월에 닳아 윤곽이 뭉개졌고,
눈동자는 텅 빈 듯하면서도 이상하게 사람을 바라보는 기운이 느껴졌다.
진아는 연필을 멈추고 속삭였다.
> “이 부처님은… 왜 이렇게 슬퍼 보여요?”
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혜원이 대답한다.
> “그건… 이 굴에서 들리는 소리를 네가 듣기 시작했단 뜻이야.”
혜원은 굴 속을 천천히 둘러본다.
이 굴은 오랜 시간 동안 기도와 피난의 공간이었다.
법당굴, 승당굴, 나한굴.
이름은 각각 다르지만, 그 안에 새겨진 사람들의 삶은 비슷했다.
6·25 전쟁 당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과 병든 이들이
청도로 피난을 떠나지 못하고 굴로 들어왔었다.
> “굴 안엔 20명이 넘게 있었지.
> 병자, 아이, 노인들…
> 전쟁 소리를 들으며 하루하루 기도했단다.”
그날, 부처님 앞에서 사람들은 살려달라 기도했고,
어떤 이는 죽은 남편을 위해 목놓아 울기도 했다.
굴은 그런 이들의 눈물과 숨결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진아는 불상의 눈을 다시 바라본다.
딱딱한 돌로 조각됐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누군가의 감정을 지니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스님, 이 불상은… 살아 있는 것 같아요.”
혜원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저 눈빛은 오백 명의 기도를 본 눈이야.
> 그리고 오늘, 너를 또 한 명의 사람으로 기억할 거야.”
굴 바닥 한편에는 1980년대 마을 청년들이 놓은 작은 나무 단이 있었다.
그 위에 향로와 촛대, 그리고 마을 어린이들이 만든 종이 연꽃이 얹혀 있었다.
그 작은 단 앞에서 진아는 무릎을 꿇고 앉았다.
오래된 기도문을 소리내어 읽진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조용히 바라는 마음 하나를 품었다.
>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기를.
> 그리고 나도… 용서받을 수 있기를.’
그 순간, 굴 안의 공기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마치 누군가가 천천히 안아주는 듯한, 아주 조용한 따뜻함이 번져왔다.
“이 굴은 노래를 부르고 있어요,”
진아가 조용히 말했다.
혜원은 놀라지 않았다.
그녀도 언젠가 그렇게 느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 “맞아.
> 누가 불러준 노래는 아니지만,
> 오래도록 여기 있었던 사람들의 기도와 숨소리가
> 하나의 노래가 된 거야.”
촛불이 살짝 흔들렸고,
그 불빛은 굴벽을 따라 마치 살아 있는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불상 뒤쪽 어둠 속에서,
언뜻 누군가가 합장한 채 엎드려 있는 모습이 비친 듯했다.
그건 옛날에 이 굴에서 기도하던 노인의 환영이었을까.
아니면 지금 이곳을 지키는 마음 그 자체였을까.
굴을 나서는 길, 진아는 돌 하나를 주워들었다.
작고 평평한 돌이었다.
그녀는 법당굴 입구에 조심스레 올려놓으며 말했다.
> “이건… 제가 처음 드리는 기도예요.
> 작지만 부처님이 기억해주실 거라 믿어요.”
혜원은 아무 말 없이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다정히 감싸안았다.
그 미소와 손끝에서
진아는 진짜 ‘불심’이란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자락리의 아침은 다른 곳보다 느렸다.
산비탈을 타고 내려온 햇살은 굴 속까지 들어오는 데 시간이 걸렸고,
새소리도, 마을의 움직임도 굴 앞에서는 늘 반 박자 느렸다.
하지만 그날 아침, 진아는 일찍 도착해 있었다.
그녀는 작은 등산배낭에서 색연필과 스케치북을 꺼냈고,
굴 입구에 엎드리듯 앉아 조심스레 불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법당굴 안에는 오직 하나의 좌불이 있었다.
묵언한 채 앉아 있는 불상은 세월에 닳아 윤곽이 뭉개졌고,
눈동자는 텅 빈 듯하면서도 이상하게 사람을 바라보는 기운이 느껴졌다.
진아는 연필을 멈추고 속삭였다.
> “이 부처님은… 왜 이렇게 슬퍼 보여요?”
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혜원이 대답한다.
> “그건… 이 굴에서 들리는 소리를 네가 듣기 시작했단 뜻이야.”
혜원은 굴 속을 천천히 둘러본다.
이 굴은 오랜 시간 동안 기도와 피난의 공간이었다.
법당굴, 승당굴, 나한굴.
이름은 각각 다르지만, 그 안에 새겨진 사람들의 삶은 비슷했다.
6·25 전쟁 당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과 병든 이들이
청도로 피난을 떠나지 못하고 굴로 들어왔었다.
> “굴 안엔 20명이 넘게 있었지.
> 병자, 아이, 노인들…
> 전쟁 소리를 들으며 하루하루 기도했단다.”
그날, 부처님 앞에서 사람들은 살려달라 기도했고,
어떤 이는 죽은 남편을 위해 목놓아 울기도 했다.
굴은 그런 이들의 눈물과 숨결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진아는 불상의 눈을 다시 바라본다.
딱딱한 돌로 조각됐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누군가의 감정을 지니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스님, 이 불상은… 살아 있는 것 같아요.”
혜원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저 눈빛은 오백 명의 기도를 본 눈이야.
> 그리고 오늘, 너를 또 한 명의 사람으로 기억할 거야.”
굴 바닥 한편에는 1980년대 마을 청년들이 놓은 작은 나무 단이 있었다.
그 위에 향로와 촛대, 그리고 마을 어린이들이 만든 종이 연꽃이 얹혀 있었다.
그 작은 단 앞에서 진아는 무릎을 꿇고 앉았다.
오래된 기도문을 소리내어 읽진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조용히 바라는 마음 하나를 품었다.
>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기를.
> 그리고 나도… 용서받을 수 있기를.’
그 순간, 굴 안의 공기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마치 누군가가 천천히 안아주는 듯한, 아주 조용한 따뜻함이 번져왔다.
“이 굴은 노래를 부르고 있어요,”
진아가 조용히 말했다.
혜원은 놀라지 않았다.
그녀도 언젠가 그렇게 느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 “맞아.
> 누가 불러준 노래는 아니지만,
> 오래도록 여기 있었던 사람들의 기도와 숨소리가
> 하나의 노래가 된 거야.”
촛불이 살짝 흔들렸고,
그 불빛은 굴벽을 따라 마치 살아 있는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불상 뒤쪽 어둠 속에서,
언뜻 누군가가 합장한 채 엎드려 있는 모습이 비친 듯했다.
그건 옛날에 이 굴에서 기도하던 노인의 환영이었을까.
아니면 지금 이곳을 지키는 마음 그 자체였을까.
굴을 나서는 길, 진아는 돌 하나를 주워들었다.
작고 평평한 돌이었다.
그녀는 법당굴 입구에 조심스레 올려놓으며 말했다.
> “이건… 제가 처음 드리는 기도예요.
> 작지만 부처님이 기억해주실 거라 믿어요.”
혜원은 아무 말 없이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다정히 감싸안았다.
그 미소와 손끝에서
진아는 진짜 ‘불심’이란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제5장. 불꽃 속의 피난처
1950년 여름.
자락리 마을엔 불길보다 빠르게 공포가 번졌다.
포성이 들려오기 시작한 건 새벽이었고, 마을을 뒤덮은 연기는 아침 해가 뜨기 전부터 퍼져나갔다.
초가집의 지붕은 종잇장처럼 불타올랐고,
아이의 울음과 어른의 고함이 뒤엉켜 산길을 따라 퍼졌다.
그때, 피난길조차 오를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다리를 다친 이, 병석에 누운 노인, 아이를 업은 젊은 여자.
그들은 산 아래로 가지 못했다. 대신, 산 위로 향했다.
그들이 찾은 곳은 해망산 동쪽 절벽—
바로 석불사가 있던 굴이었다.
굴 안은 넓지 않았다.
불상 하나가 조용히 앉아 있고, 촛불 몇 개와 짚자리 몇 장뿐이었다.
하지만 그 좁은 공간이 유일한 희망이 되어주었다.
몸을 의탁한 이들은 스무 명을 넘겼다.
누군가는 기침을 했고, 누군가는 기도를 중얼거렸고,
또 누군가는…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그 굴 안에서, 사람들은 부처님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 “살려만 주신다면… 절을 다시 지을게요.”
> “이 아이만… 이 아이만 살게 해주세요.”
> “전 가진 게 없지만, 평생 이 절을 닦겠습니다…”
어느 날 밤, 굴 밖에서 불빛이 보였다.
총을 든 사람들이 근처를 지나갔고, 굴 안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아이의 울음이 터질까, 어른들은 손수건으로 아이의 입을 막았다.
그 공포의 순간, 굴 안에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오직 석불만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 기적처럼—
총성은 멀어졌고, 굴은 들키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이 마을로 돌아왔다.
그러나 집은 불탔고, 들판은 황폐했고, 절은 폐허가 되었다.
굴만 남아 있었다.
불상도, 조각도, 탑도 대부분 사라졌지만,
굴은 굳건했고, 그 안에 남은 침묵의 기도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때 마을 사람들이 모였다.
아무도 지시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 “절은 다시 지어야지.”
> “굴이 우리를 지켜줬으니,
> 이제 우리가 굴을 지켜야지.”
그 중심에 있었던 이는 김보진이었다.
당시 마을 유지였던 그는 흩어진 나무와 돌을 모으고,
마을 청년들과 함께 요사채 한 칸짜리 작은 암자를 짓기 시작했다.
무너진 돌계단을 다시 올리고,
남은 기왓장을 하나씩 씻고,
불상 대신 작은 부처님 사진을 모셔두었다.
그 암자는 이름이 없었다.
그저 ‘부처님 굴 옆집’이라고 불렸다.
그 공간에서 사람들은 다시 기도했고,
다시 웃었고,
다시 살아갔다.
현재.
혜원은 법당굴 안에서 조용히 앉아 있었다.
굴 벽은 여전히 촉촉했고,
불상은 여전히 묵묵했다.
그녀는 노보살 장씨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 “스님, 전쟁 때 굴 안에 있었던 사람들은요,
> 부처님을 본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기 자신’을 본 거라오.”
진아는 굴 앞에 작은 꽃을 놓으며 말했다.
> “부처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는데…
> 그래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거예요.
> 이상하죠?”
혜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 “어쩌면… 그 침묵이 제일 큰 기적이었는지도 모르지.”
굴은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 안에선 수많은 사람이 살았고,
또 수많은 기도가 숨 쉬었다.
그것이 석불사가 존재하는 이유였다.
1950년 여름.
자락리 마을엔 불길보다 빠르게 공포가 번졌다.
포성이 들려오기 시작한 건 새벽이었고, 마을을 뒤덮은 연기는 아침 해가 뜨기 전부터 퍼져나갔다.
초가집의 지붕은 종잇장처럼 불타올랐고,
아이의 울음과 어른의 고함이 뒤엉켜 산길을 따라 퍼졌다.
그때, 피난길조차 오를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다리를 다친 이, 병석에 누운 노인, 아이를 업은 젊은 여자.
그들은 산 아래로 가지 못했다. 대신, 산 위로 향했다.
그들이 찾은 곳은 해망산 동쪽 절벽—
바로 석불사가 있던 굴이었다.
굴 안은 넓지 않았다.
불상 하나가 조용히 앉아 있고, 촛불 몇 개와 짚자리 몇 장뿐이었다.
하지만 그 좁은 공간이 유일한 희망이 되어주었다.
몸을 의탁한 이들은 스무 명을 넘겼다.
누군가는 기침을 했고, 누군가는 기도를 중얼거렸고,
또 누군가는…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그 굴 안에서, 사람들은 부처님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 “살려만 주신다면… 절을 다시 지을게요.”
> “이 아이만… 이 아이만 살게 해주세요.”
> “전 가진 게 없지만, 평생 이 절을 닦겠습니다…”
어느 날 밤, 굴 밖에서 불빛이 보였다.
총을 든 사람들이 근처를 지나갔고, 굴 안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아이의 울음이 터질까, 어른들은 손수건으로 아이의 입을 막았다.
그 공포의 순간, 굴 안에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오직 석불만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 기적처럼—
총성은 멀어졌고, 굴은 들키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이 마을로 돌아왔다.
그러나 집은 불탔고, 들판은 황폐했고, 절은 폐허가 되었다.
굴만 남아 있었다.
불상도, 조각도, 탑도 대부분 사라졌지만,
굴은 굳건했고, 그 안에 남은 침묵의 기도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때 마을 사람들이 모였다.
아무도 지시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 “절은 다시 지어야지.”
> “굴이 우리를 지켜줬으니,
> 이제 우리가 굴을 지켜야지.”
그 중심에 있었던 이는 김보진이었다.
당시 마을 유지였던 그는 흩어진 나무와 돌을 모으고,
마을 청년들과 함께 요사채 한 칸짜리 작은 암자를 짓기 시작했다.
무너진 돌계단을 다시 올리고,
남은 기왓장을 하나씩 씻고,
불상 대신 작은 부처님 사진을 모셔두었다.
그 암자는 이름이 없었다.
그저 ‘부처님 굴 옆집’이라고 불렸다.
그 공간에서 사람들은 다시 기도했고,
다시 웃었고,
다시 살아갔다.
현재.
혜원은 법당굴 안에서 조용히 앉아 있었다.
굴 벽은 여전히 촉촉했고,
불상은 여전히 묵묵했다.
그녀는 노보살 장씨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 “스님, 전쟁 때 굴 안에 있었던 사람들은요,
> 부처님을 본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기 자신’을 본 거라오.”
진아는 굴 앞에 작은 꽃을 놓으며 말했다.
> “부처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는데…
> 그래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거예요.
> 이상하죠?”
혜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 “어쩌면… 그 침묵이 제일 큰 기적이었는지도 모르지.”
굴은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 안에선 수많은 사람이 살았고,
또 수많은 기도가 숨 쉬었다.
그것이 석불사가 존재하는 이유였다.

제6장. 빛을 품은 암자
전쟁이 끝난 후에도 자락리는 온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타다 남은 초가의 벽, 폐허처럼 남은 논,
그리고 굴만 덩그러니 남은 절터.
하지만 굴 안엔 여전히 불상이 있었다.
모진 세월에도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부처는
아무 말 없이 사람들을 맞아주었다.
“굴이 우릴 살렸지.”
그 말은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돌았다.
사람들은 다시 모였다.
지시도, 명령도 없었다.
단지 마음이 모였고, 손이 움직였고, 절이 다시 세워졌다.
돌을 나른 이는 김보진이었다.
그는 말없이 가장 먼저 폐자재를 주웠고,
젊은이들이 뒤따랐다.
아이들은 기왓장을 씻었고, 어머니들은 절 밥솥을 걸었다.
그렇게 석불사는 다시 숨을 쉬었다.
요사채 하나, 작고 낡은 암자 한 채.
하지만 사람들은 그곳을
“부처님 굴 옆집”이라 불렀다.
그곳은 절이 아니라,
마음이 깃든 암자였다.
그로부터 수십 년 후.
혜원은 세상과의 인연을 정리하고
자락리로 들어왔다.
도시에선 기자였다.
세상의 비극을 글로 전하는 사람.
그러나 어느 날, 더 이상 글로 사람을 위로할 수 없다는
깊은 허무 속에서, 그녀는 걷기 시작했다.
방황 끝에 다다른 곳이 이곳,
해망산 석굴 앞이었다.
“왜 여기 왔느냐”고 누군가 물었다면,
그녀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 “나는, 울고 있는 부처님을 만났어요.
> 그분을 웃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처음엔 아무도 없었다.
굴은 조용했고, 요사채는 바람에 삐걱거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두렵지 않았다.
그녀는 굴을 닦았고, 무너진 단을 올렸고,
작은 촛불 하나를 켜두었다.
그 촛불은 곧 마을 사람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스님이 오셨다더라.”
“거기 다시 법회 연대매.”
“우리 딸 손도 잡고 가야지.”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나,
진아가 나타났다.
어느 봄날,
조용히 굴 앞에 앉아 있던 소녀.
그녀는 사람을 피했고, 세상을 두려워했고,
하지만 부처님 앞에선 오래도록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혜원은 알아차렸다.
저 아이가 언젠가 이곳을 잇게 될 거란 걸.
봄바람이 부는 어느 날,
석불사 중마당엔 작은 촛불 모임이 열렸다.
마을 주민들과 아이들,
외지에서 온 신도 몇 명,
그리고 진아.
진아는 조용히 앉아 부처님을 바라보았다.
예전엔 어색하던 합장도,
이제는 익숙했다.
혜원은 그녀의 옆에서 속삭였다.
> “절이 절이 되는 건,
> 기도보다도…
> 이렇게 사람들이 모이는 순간이란다.”
진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음속에 작은 불씨 하나가 피어났다.
어쩌면 언젠가 자신이 이곳을 지키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감정.
그 불씨는,
빛을 품은 암자처럼
조용히 따뜻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자락리는 온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타다 남은 초가의 벽, 폐허처럼 남은 논,
그리고 굴만 덩그러니 남은 절터.
하지만 굴 안엔 여전히 불상이 있었다.
모진 세월에도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부처는
아무 말 없이 사람들을 맞아주었다.
“굴이 우릴 살렸지.”
그 말은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돌았다.
사람들은 다시 모였다.
지시도, 명령도 없었다.
단지 마음이 모였고, 손이 움직였고, 절이 다시 세워졌다.
돌을 나른 이는 김보진이었다.
그는 말없이 가장 먼저 폐자재를 주웠고,
젊은이들이 뒤따랐다.
아이들은 기왓장을 씻었고, 어머니들은 절 밥솥을 걸었다.
그렇게 석불사는 다시 숨을 쉬었다.
요사채 하나, 작고 낡은 암자 한 채.
하지만 사람들은 그곳을
“부처님 굴 옆집”이라 불렀다.
그곳은 절이 아니라,
마음이 깃든 암자였다.
그로부터 수십 년 후.
혜원은 세상과의 인연을 정리하고
자락리로 들어왔다.
도시에선 기자였다.
세상의 비극을 글로 전하는 사람.
그러나 어느 날, 더 이상 글로 사람을 위로할 수 없다는
깊은 허무 속에서, 그녀는 걷기 시작했다.
방황 끝에 다다른 곳이 이곳,
해망산 석굴 앞이었다.
“왜 여기 왔느냐”고 누군가 물었다면,
그녀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 “나는, 울고 있는 부처님을 만났어요.
> 그분을 웃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처음엔 아무도 없었다.
굴은 조용했고, 요사채는 바람에 삐걱거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두렵지 않았다.
그녀는 굴을 닦았고, 무너진 단을 올렸고,
작은 촛불 하나를 켜두었다.
그 촛불은 곧 마을 사람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스님이 오셨다더라.”
“거기 다시 법회 연대매.”
“우리 딸 손도 잡고 가야지.”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나,
진아가 나타났다.
어느 봄날,
조용히 굴 앞에 앉아 있던 소녀.
그녀는 사람을 피했고, 세상을 두려워했고,
하지만 부처님 앞에선 오래도록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혜원은 알아차렸다.
저 아이가 언젠가 이곳을 잇게 될 거란 걸.
봄바람이 부는 어느 날,
석불사 중마당엔 작은 촛불 모임이 열렸다.
마을 주민들과 아이들,
외지에서 온 신도 몇 명,
그리고 진아.
진아는 조용히 앉아 부처님을 바라보았다.
예전엔 어색하던 합장도,
이제는 익숙했다.
혜원은 그녀의 옆에서 속삭였다.
> “절이 절이 되는 건,
> 기도보다도…
> 이렇게 사람들이 모이는 순간이란다.”
진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음속에 작은 불씨 하나가 피어났다.
어쩌면 언젠가 자신이 이곳을 지키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감정.
그 불씨는,
빛을 품은 암자처럼
조용히 따뜻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제7장. 탑골의 기억
해망산 등성이에 봄비가 내린 뒤,
산길은 눅눅했고 돌계단엔 이끼가 잔뜩 끼어 있었다.
진아는 혜원 스님을 따라
석불사 뒤편 오솔길을 조심스레 걸었다.
“여기가… ‘탑골’이에요?”
“그래. 지금은 잡풀밖에 없지만,
예전엔 탑도 있었고, 미륵불도 셋이나 있었지.”
지금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풀 속에 반쯤 파묻힌 석조 잔해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돌무더기,
그리고 오래된 전설 한 조각만이 남아 있었다.
혜원은 한참을 서 있다가 조용히 말했다.
> “옛날 마을에 저수지를 지을 때,
> 이 탑을 옮겼던 사람이 있었어.
> 그 사람 이름이 김보진이야.”
1930년대.
마을 사람들은 저수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여름 장마철만 되면
둑이 어김없이 무너졌다.
그때 김보진은 굳게 말했다.
> “탑을 옮겨야 돼.
> 부처님이… 자리를 옮기고 싶어 하시는 거야.”
그는 인부들과 함께
밤중에 석탑과 미륵불 세 기를
조심스럽게 언덕 너머로 옮겼다.
그 이후,
저수지 둑은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다.
진아는 숨죽인 채 이야기를 들었다.
> “지금은… 그 탑 어디 있어요?”
> “없어. 도난당했지.
> 불상도, 탑도, 다 사라졌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진아는 무릎을 꿇고,
작은 돌 하나를 땅에서 집어 들었다.
그녀는 그 돌을
탑이 있었던 자리에 조심스레 올려두며 말했다.
> “그럼… 이게 제 기도예요.
> 부처님이 다시 오시진 않더라도,
> 저는 여기 있다는 걸 기억할게요.”
며칠 뒤,
혜원은 굴 앞에 조그마한 안내석 하나를 세웠다.
그녀와 진아가 함께 만든 글이었다.
이곳은 ‘잃어버린 탑’이 있던 자리입니다.
탑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여기에 있습니다.
돌 하나, 꽃 한 송이, 바람 한 줄기도 기도가 됩니다.
부디 잠시 머물러, 마음속의 탑을 떠올려주세요.
그날 저녁.
마을 아이 둘이 돌탑 앞에 작은 연등을 놓고 절을 했다.
진아는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 “탑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돼.
> 기억하고, 기도하는 사람만 있다면…
> 탑은 다시 살아나.”
바람이 불었다.
탑이 있었던 자리 위에,
가벼운 연등 불빛 하나가 살며시 떨렸다.
해망산 등성이에 봄비가 내린 뒤,
산길은 눅눅했고 돌계단엔 이끼가 잔뜩 끼어 있었다.
진아는 혜원 스님을 따라
석불사 뒤편 오솔길을 조심스레 걸었다.
“여기가… ‘탑골’이에요?”
“그래. 지금은 잡풀밖에 없지만,
예전엔 탑도 있었고, 미륵불도 셋이나 있었지.”
지금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풀 속에 반쯤 파묻힌 석조 잔해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돌무더기,
그리고 오래된 전설 한 조각만이 남아 있었다.
혜원은 한참을 서 있다가 조용히 말했다.
> “옛날 마을에 저수지를 지을 때,
> 이 탑을 옮겼던 사람이 있었어.
> 그 사람 이름이 김보진이야.”
1930년대.
마을 사람들은 저수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여름 장마철만 되면
둑이 어김없이 무너졌다.
그때 김보진은 굳게 말했다.
> “탑을 옮겨야 돼.
> 부처님이… 자리를 옮기고 싶어 하시는 거야.”
그는 인부들과 함께
밤중에 석탑과 미륵불 세 기를
조심스럽게 언덕 너머로 옮겼다.
그 이후,
저수지 둑은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다.
진아는 숨죽인 채 이야기를 들었다.
> “지금은… 그 탑 어디 있어요?”
> “없어. 도난당했지.
> 불상도, 탑도, 다 사라졌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진아는 무릎을 꿇고,
작은 돌 하나를 땅에서 집어 들었다.
그녀는 그 돌을
탑이 있었던 자리에 조심스레 올려두며 말했다.
> “그럼… 이게 제 기도예요.
> 부처님이 다시 오시진 않더라도,
> 저는 여기 있다는 걸 기억할게요.”
며칠 뒤,
혜원은 굴 앞에 조그마한 안내석 하나를 세웠다.
그녀와 진아가 함께 만든 글이었다.
이곳은 ‘잃어버린 탑’이 있던 자리입니다.
탑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여기에 있습니다.
돌 하나, 꽃 한 송이, 바람 한 줄기도 기도가 됩니다.
부디 잠시 머물러, 마음속의 탑을 떠올려주세요.
그날 저녁.
마을 아이 둘이 돌탑 앞에 작은 연등을 놓고 절을 했다.
진아는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 “탑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돼.
> 기억하고, 기도하는 사람만 있다면…
> 탑은 다시 살아나.”
바람이 불었다.
탑이 있었던 자리 위에,
가벼운 연등 불빛 하나가 살며시 떨렸다.


제8장. 도난과 망각
1980년대 후반,
자락리 산비탈 한쪽 구석.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외딴 저수지 끝자락에
작고 조촐한 삼층석탑이 서 있었다.
비안면 자락동, 산352-1번지.
그 탑은 미흘사의 마지막 흔적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종종 그 석탑 옆에 작은 꽃을 놓고,
굴을 오가던 스님들은 그 탑에 가볍게 절을 올렸다.
그러나 어느 날 아침,
그 탑은 자취를 감췄다.
“스님… 탑이 없어졌어요.”
그 말을 전한 이는 동네 노인회장이었다.
잔뜩 겁먹은 얼굴로 혜원을 찾았고,
그녀는 그 말을 믿지 못해 직접 산길을 올랐다.
하지만,
탑은 정말로 없었다.
탑이 있던 자리는 텅 비었고,
잔돌 몇 개만 남아 허무하게 흩어져 있었다.
> “누가… 왜… 이런 짓을…”
혜원은 말끝을 잇지 못했다.
그날 밤, 그녀는 잠들지 못했다.
굴 안의 촛불도 켜지 않았다.
불상 앞에 무릎을 꿇고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속으로 수없이 자문했다.
> “내가… 너무 늦게 왔던 걸까?”
> “왜 더 빨리 지키지 못했을까?”
> “그걸… 그냥 그렇게 사라지게 두다니…”
며칠 뒤,
서울에서 온 박재한이 들고 온 보고서 안에는
탑의 과거 기록이 남아 있었다.
> 『문화유적총람(1977)』
> 『의성군 문화유적 지표조사 보고서(1987)』
보고서에는 ‘비안면 자락동 석탑’이라 적혀 있었고,
미흘사 터로 추정된다는 문장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그 이후, 아무도 그 탑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알지 못했다.
혜원은 죄책감 속에서 탑골 언덕에 다시 오르지 않았다.
그저 매일 굴 앞에 앉아 조용히 기도했다.
그리고 자신에게도 물었다.
> “형체가 사라졌다고, 그 존재마저 사라지는 걸까?”
그날 오후.
진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 “스님, 그 탑… 진짜 보고 싶었어요.”
> “나중에 저도 그 앞에서 기도하고 싶었는데…”
혜원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자 진아가 작은 돌을 하나 집어 들었다.
그리고 굴 앞의 작은 단 위에 그 돌을 조심스럽게 올렸다.
> “그럼 전… 이걸 ‘나만의 탑’이라고 생각할래요.”
며칠 후,
진아는 손으로 글씨를 써서 굴 앞 작은 입구에 붙였다.
이 탑은 여기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한
그 자리는 지워지지 않습니다.
당신이 이곳을 지나친다면
잠시 멈춰, 사라진 탑을 마음속에 떠올려 주세요.
혜원은 그 글을 읽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탑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기억하려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굴의 침묵은 깊고 따뜻해졌다.
그날 밤, 굴 안의 촛불이 흔들렸다.
그림자는 굴벽 위로 퍼졌고,
그중 하나는 마치 석탑처럼 층을 이뤄 우뚝 서 있는 듯했다.
부처님은 여전히 조용히 앉아 있었고,
그 침묵은, 더 이상 상실이 아닌
기억의 온기로 남아 있었다.
1980년대 후반,
자락리 산비탈 한쪽 구석.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외딴 저수지 끝자락에
작고 조촐한 삼층석탑이 서 있었다.
비안면 자락동, 산352-1번지.
그 탑은 미흘사의 마지막 흔적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종종 그 석탑 옆에 작은 꽃을 놓고,
굴을 오가던 스님들은 그 탑에 가볍게 절을 올렸다.
그러나 어느 날 아침,
그 탑은 자취를 감췄다.
“스님… 탑이 없어졌어요.”
그 말을 전한 이는 동네 노인회장이었다.
잔뜩 겁먹은 얼굴로 혜원을 찾았고,
그녀는 그 말을 믿지 못해 직접 산길을 올랐다.
하지만,
탑은 정말로 없었다.
탑이 있던 자리는 텅 비었고,
잔돌 몇 개만 남아 허무하게 흩어져 있었다.
> “누가… 왜… 이런 짓을…”
혜원은 말끝을 잇지 못했다.
그날 밤, 그녀는 잠들지 못했다.
굴 안의 촛불도 켜지 않았다.
불상 앞에 무릎을 꿇고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속으로 수없이 자문했다.
> “내가… 너무 늦게 왔던 걸까?”
> “왜 더 빨리 지키지 못했을까?”
> “그걸… 그냥 그렇게 사라지게 두다니…”
며칠 뒤,
서울에서 온 박재한이 들고 온 보고서 안에는
탑의 과거 기록이 남아 있었다.
> 『문화유적총람(1977)』
> 『의성군 문화유적 지표조사 보고서(1987)』
보고서에는 ‘비안면 자락동 석탑’이라 적혀 있었고,
미흘사 터로 추정된다는 문장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그 이후, 아무도 그 탑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알지 못했다.
혜원은 죄책감 속에서 탑골 언덕에 다시 오르지 않았다.
그저 매일 굴 앞에 앉아 조용히 기도했다.
그리고 자신에게도 물었다.
> “형체가 사라졌다고, 그 존재마저 사라지는 걸까?”
그날 오후.
진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 “스님, 그 탑… 진짜 보고 싶었어요.”
> “나중에 저도 그 앞에서 기도하고 싶었는데…”
혜원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자 진아가 작은 돌을 하나 집어 들었다.
그리고 굴 앞의 작은 단 위에 그 돌을 조심스럽게 올렸다.
> “그럼 전… 이걸 ‘나만의 탑’이라고 생각할래요.”
며칠 후,
진아는 손으로 글씨를 써서 굴 앞 작은 입구에 붙였다.
이 탑은 여기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한
그 자리는 지워지지 않습니다.
당신이 이곳을 지나친다면
잠시 멈춰, 사라진 탑을 마음속에 떠올려 주세요.
혜원은 그 글을 읽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탑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기억하려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굴의 침묵은 깊고 따뜻해졌다.
그날 밤, 굴 안의 촛불이 흔들렸다.
그림자는 굴벽 위로 퍼졌고,
그중 하나는 마치 석탑처럼 층을 이뤄 우뚝 서 있는 듯했다.
부처님은 여전히 조용히 앉아 있었고,
그 침묵은, 더 이상 상실이 아닌
기억의 온기로 남아 있었다.

제9장. 눈썹바위의 나한들
석불사에서 갈라지는 자락길은 두 방향으로 이어진다.
하나는 법당굴로, 또 하나는 산기슭 바위 절벽 아래로 향하는 길.
마을 사람들은 이쪽을 나한골, 혹은 눈썹바위길이라 불렀다.
예전에는 이 길 아래에 나한상이 여럿 놓여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저 바위들만 남아 있었다.
진아는 혜원과 함께 그 길을 걸었다.
습기가 오른 오솔길은 조용했고,
눈썹처럼 휘어진 바위 아래에 도달하자,
이끼 낀 바위 사이로 부서진 불상 조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팔이 없는 몸통, 얼굴이 깨진 머리,
눈동자 하나 없이 허공을 향해 앉아 있는 파편들.
진아는 말없이 그 앞에 섰다.
> “이건… 부처님 아닌 것 같아요.
> 너무 무섭게 생겼어요.”
혜원은 그 말에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 “그건 우리가 겁을 내는 마음을 보고 있는 거야.
> 나한은 깨달은 자지만, 중생 속에서 살아간 분들이지.
> 그래서 꾸미지 않고, 울지도 웃지도 않아.”
노보살 장씨는 종종 말했다.
> “옛날엔 스무 기 넘게 있었어.
> 누구는 병이 나아서 기도 올렸고,
> 누구는 밤중에 울음소릴 들었다고도 했지.”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나한불상들은 파손되고, 어떤 건 도난당하고,
지금은 그저 돌 조각 몇 개만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자리를 ‘나한굴’이라 불렀다.
굴 앞에 앉은 진아는 오래도록 나한 조각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 “스님, 부서진 부처님도… 부처님이에요?”
> “그래, 부서진 믿음도 믿음이듯이.”
혜원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조용히 이었다.
> “깨지고, 무너지고, 잊히더라도…
> 그 자리를 지키려는 마음이 있으면,
> 그건 이미 부처님이지.”
다음 날.
진아는 작은 그림을 들고 석불사를 찾았다.
스케치북 한 장에 그려진 부처는
눈동자가 없고, 입이 삐뚤고, 팔이 한쪽 없었다.
그러나 그 손에는 꽃 한 송이가 들려 있었다.
> “이건 제가 그린 나한이에요.
> 이상하게 생겼지만… 따뜻해요.”
혜원은 그림을 조용히 받아들었다.
그 눈 속엔 부서진 것들을 향한 연민과,
그것들을 다시 안아주는 자비가 담겨 있었다.
그날 오후.
진아는 그 그림을 코팅해서
나한굴 입구 바위 옆에 조심스레 붙였다.
그리고 작은 돌 하나를 그 아래에 얹으며 말했다.
> “여기에 앉아 계셨죠.
> 다시는 혼자 울게 안 둘게요.”
바람이 불었다.
그림은 가볍게 흔들렸고,
그 안의 나한은 마치 꽃을 들고 미소 짓는 듯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날 밤, 혜원은 굴 안에서 생각했다.
> “부서진 신앙도,
> 누군가의 손끝에서 다시 피어난다면…
> 그건 결코 잊힌 것이 아니지.”
굴 밖에서 바람이 불었고,
부러진 나한불의 어깨 위로
달빛이 살며시 내려앉았다.
석불사에서 갈라지는 자락길은 두 방향으로 이어진다.
하나는 법당굴로, 또 하나는 산기슭 바위 절벽 아래로 향하는 길.
마을 사람들은 이쪽을 나한골, 혹은 눈썹바위길이라 불렀다.
예전에는 이 길 아래에 나한상이 여럿 놓여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저 바위들만 남아 있었다.
진아는 혜원과 함께 그 길을 걸었다.
습기가 오른 오솔길은 조용했고,
눈썹처럼 휘어진 바위 아래에 도달하자,
이끼 낀 바위 사이로 부서진 불상 조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팔이 없는 몸통, 얼굴이 깨진 머리,
눈동자 하나 없이 허공을 향해 앉아 있는 파편들.
진아는 말없이 그 앞에 섰다.
> “이건… 부처님 아닌 것 같아요.
> 너무 무섭게 생겼어요.”
혜원은 그 말에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 “그건 우리가 겁을 내는 마음을 보고 있는 거야.
> 나한은 깨달은 자지만, 중생 속에서 살아간 분들이지.
> 그래서 꾸미지 않고, 울지도 웃지도 않아.”
노보살 장씨는 종종 말했다.
> “옛날엔 스무 기 넘게 있었어.
> 누구는 병이 나아서 기도 올렸고,
> 누구는 밤중에 울음소릴 들었다고도 했지.”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나한불상들은 파손되고, 어떤 건 도난당하고,
지금은 그저 돌 조각 몇 개만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자리를 ‘나한굴’이라 불렀다.
굴 앞에 앉은 진아는 오래도록 나한 조각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 “스님, 부서진 부처님도… 부처님이에요?”
> “그래, 부서진 믿음도 믿음이듯이.”
혜원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조용히 이었다.
> “깨지고, 무너지고, 잊히더라도…
> 그 자리를 지키려는 마음이 있으면,
> 그건 이미 부처님이지.”
다음 날.
진아는 작은 그림을 들고 석불사를 찾았다.
스케치북 한 장에 그려진 부처는
눈동자가 없고, 입이 삐뚤고, 팔이 한쪽 없었다.
그러나 그 손에는 꽃 한 송이가 들려 있었다.
> “이건 제가 그린 나한이에요.
> 이상하게 생겼지만… 따뜻해요.”
혜원은 그림을 조용히 받아들었다.
그 눈 속엔 부서진 것들을 향한 연민과,
그것들을 다시 안아주는 자비가 담겨 있었다.
그날 오후.
진아는 그 그림을 코팅해서
나한굴 입구 바위 옆에 조심스레 붙였다.
그리고 작은 돌 하나를 그 아래에 얹으며 말했다.
> “여기에 앉아 계셨죠.
> 다시는 혼자 울게 안 둘게요.”
바람이 불었다.
그림은 가볍게 흔들렸고,
그 안의 나한은 마치 꽃을 들고 미소 짓는 듯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날 밤, 혜원은 굴 안에서 생각했다.
> “부서진 신앙도,
> 누군가의 손끝에서 다시 피어난다면…
> 그건 결코 잊힌 것이 아니지.”
굴 밖에서 바람이 불었고,
부러진 나한불의 어깨 위로
달빛이 살며시 내려앉았다.

제10장. 중마당에서 피어난 연꽃
봄이 완연해진 4월.
해망산 자락에도 따뜻한 바람이 감돌기 시작했다.
석불사 중마당에는
지난겨울 내내 쌓여 있던 낙엽이 모두 쓸려 나가고,
새 풀들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혜원은 작은 메모장을 꺼내 적었다.
> “연꽃, 솟대, 아이들 그림…
> 그리고… 진아의 이야기.”
“축제를 해보려 해.”
혜원이 말했다.
진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 “정말요? 이 절에서요?”
> “그래. 부처님 대신 우리가 부처님의 뜻을 피워보는 거지.”
그 말에 진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부터 마을은 바쁘게 움직였다.
장씨 노보살은 오래된 화분을 꺼내어 손수 연꽃을 옮겨 심었고,
김씨 아저씨는 탑골에서 주운 돌을 다듬어 연등 받침을 만들었다.
초등학생들은 색종이로 연꽃을 접고,
청년회는 축제용 현수막을 만드는 데 나섰다.
혜원은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며 미소 지었다.
> “절이 절다워지는 건,
> 불경보다도… 사람이 모일 때야.”
축제 당일.
석불사 중마당엔 작고 고운 등불들이 하나둘 놓였다.
아이들이 만든 연꽃들이 굴 입구에서 중마당까지 길게 깔렸고,
법당굴 앞에는 작은 단상이 만들어졌다.
그 위에 진아가 섰다.
조금 떨리는 표정으로,
작은 종이 한 장을 들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 “전… 이 절에 처음 왔을 땐 무서웠어요.
> 굴도, 부처님도… 그리고 침묵도.”
> “하지만 지금은 알아요.
> 그 침묵이 제 얘기를 기다려준 거였다는 걸.”
> “부처님이 웃지 않는 건,
> 우리가 먼저 웃기를 기다려서인 것 같아요.”
> “그리고 이 자리는…
> 탑이 없어도, 불상이 없어도,
> 우리가 부처님의 마음을 다시 짓는 곳이에요.”
중마당은 조용했다.
그러나 어른들의 눈가엔 빛이 맺혔다.
아이들은 진아의 연꽃 그림을 들고 옆에서 박수를 보냈다.
노보살은 혜원 옆에 다가와 속삭였다.
> “이 아이, 진짜 이 절을 살렸구먼…”
혜원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밤이 되자, 중마당엔 연등들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부처님의 얼굴은 굴 안에 있었지만,
그 미소는 중마당 사람들의 얼굴에 퍼져 있었다.
진아는 혜원 옆에 앉아 말했다.
> “스님, 저도 나중에… 절을 지키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 “그게 널 부르는 길이라면,
> 이미 넌 그 길 위에 있단다.”
진아는 말없이 합장했다.
그 손 안엔 작은 꽃잎 하나가 들려 있었다.
하늘에 별이 뜨기 시작했다.
굴 안의 촛불이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석불사는 말없이 그 빛을 품었고,
중마당은 부처 없는 연꽃 속에서
또 하나의 신성을 피워내고 있었다.
봄이 완연해진 4월.
해망산 자락에도 따뜻한 바람이 감돌기 시작했다.
석불사 중마당에는
지난겨울 내내 쌓여 있던 낙엽이 모두 쓸려 나가고,
새 풀들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혜원은 작은 메모장을 꺼내 적었다.
> “연꽃, 솟대, 아이들 그림…
> 그리고… 진아의 이야기.”
“축제를 해보려 해.”
혜원이 말했다.
진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 “정말요? 이 절에서요?”
> “그래. 부처님 대신 우리가 부처님의 뜻을 피워보는 거지.”
그 말에 진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부터 마을은 바쁘게 움직였다.
장씨 노보살은 오래된 화분을 꺼내어 손수 연꽃을 옮겨 심었고,
김씨 아저씨는 탑골에서 주운 돌을 다듬어 연등 받침을 만들었다.
초등학생들은 색종이로 연꽃을 접고,
청년회는 축제용 현수막을 만드는 데 나섰다.
혜원은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며 미소 지었다.
> “절이 절다워지는 건,
> 불경보다도… 사람이 모일 때야.”
축제 당일.
석불사 중마당엔 작고 고운 등불들이 하나둘 놓였다.
아이들이 만든 연꽃들이 굴 입구에서 중마당까지 길게 깔렸고,
법당굴 앞에는 작은 단상이 만들어졌다.
그 위에 진아가 섰다.
조금 떨리는 표정으로,
작은 종이 한 장을 들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 “전… 이 절에 처음 왔을 땐 무서웠어요.
> 굴도, 부처님도… 그리고 침묵도.”
> “하지만 지금은 알아요.
> 그 침묵이 제 얘기를 기다려준 거였다는 걸.”
> “부처님이 웃지 않는 건,
> 우리가 먼저 웃기를 기다려서인 것 같아요.”
> “그리고 이 자리는…
> 탑이 없어도, 불상이 없어도,
> 우리가 부처님의 마음을 다시 짓는 곳이에요.”
중마당은 조용했다.
그러나 어른들의 눈가엔 빛이 맺혔다.
아이들은 진아의 연꽃 그림을 들고 옆에서 박수를 보냈다.
노보살은 혜원 옆에 다가와 속삭였다.
> “이 아이, 진짜 이 절을 살렸구먼…”
혜원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밤이 되자, 중마당엔 연등들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부처님의 얼굴은 굴 안에 있었지만,
그 미소는 중마당 사람들의 얼굴에 퍼져 있었다.
진아는 혜원 옆에 앉아 말했다.
> “스님, 저도 나중에… 절을 지키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 “그게 널 부르는 길이라면,
> 이미 넌 그 길 위에 있단다.”
진아는 말없이 합장했다.
그 손 안엔 작은 꽃잎 하나가 들려 있었다.
하늘에 별이 뜨기 시작했다.
굴 안의 촛불이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석불사는 말없이 그 빛을 품었고,
중마당은 부처 없는 연꽃 속에서
또 하나의 신성을 피워내고 있었다.

제11장. 사라진 탑, 남은 믿음
봄비가 지나간 아침,
혜원은 혼자 탑골에 올랐다.
비에 젖은 땅은 부드럽게 발을 잡았고,
잔디와 잡풀 사이로 흙물 든 돌 조각들이 드문드문 드러나 있었다.
오래전 석탑이 서 있던 자리.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녀는 눈을 감고,
그 자리에 여전히 무언가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 “내가 너무 늦게 온 건 아닐까…”
그녀는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그날 밤, 혜원은
박재한에게 받은 옛 문서를 다시 꺼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彌屹寺在鳳尾山 — 미흘사는 봉미산에 있다.”
봉미산, 바로 해망산의 옛 이름.
그리고 그 산 중턱, 이곳 자락리.
> “우리는 사라진 게 아니라,
> 흐름 속에 이어진 거야.”
그녀는 속삭이듯 중얼였다.
다음 날 아침,
혜원은 진아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 “나는… 기자였어.
> 전쟁터에 가고, 사람의 절망을 찍고,
> 눈물 많은 글을 썼지.”
> “그런데… 어느 순간 아무것도 의미가 없더라고.
>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알았을 때,
> 이 굴이 떠올랐어.”
> “여기 처음 왔을 때…
> 부처님이 조용히 울고 계셨거든.”
진아는 조용히 혜원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끝은 따뜻했고, 오래된 마음 같았다.
며칠 뒤,
진아는 학교에서 ‘우리 동네 이야기’ 발표를 했다.
제목은
“잃어버린 탑, 그리고 우리”
진아는 또박또박 말했다.
> “탑은 사라졌어요.
> 도둑맞았고, 지금은 아무도 몰라요.”
> “하지만… 그 자리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직 있어요.
> 그게 바로 ‘남은 믿음’이에요.”
> “탑은 없어도, 부처님은 남아 있어요.
> 우리 마음 안에요.”
그날 진아의 발표는
마을 사람들의 SNS에 올라갔고,
멀리 있는 신도들에게도 공유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진아는 혜원에게 말했다.
> “스님,
> 저… 탑을 다시 세우고 싶어요.”
> “진짜 돌로 말고,
> 사람들 마음속에요.”
혜원은 눈을 감고 미소 지었다.
> “네가 바로 이 절의 다음 사람이란 걸
> 부처님도 알고 계셨던 것 같구나.”
진아는 작은 나무 팻말을 만들어
탑골 입구에 꽂았다.
이곳은 잃어버린 탑의 자리입니다.
탑은 사라졌지만,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마음을 모아 탑을 세워주세요.
돌 하나, 기도 하나, 기억 하나가 탑입니다.
그날 밤.
굴 안에서 바라본 바깥엔 별이 떠 있었다.
진아는 법당굴 한편에 앉아 합장하고 있었다.
혜원은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
> “탑이 없다는 게
> 우리가 신이 없다는 뜻은 아니야.”
> “부처님은 늘 우리보다 앞서,
> 조용히 기다리고 계셔.”
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서 그분은
> 늘 웃지 않고 계시는 걸까요?”
혜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침묵은 따뜻했다.
부처님도 말이 없었지만,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봄비가 지나간 아침,
혜원은 혼자 탑골에 올랐다.
비에 젖은 땅은 부드럽게 발을 잡았고,
잔디와 잡풀 사이로 흙물 든 돌 조각들이 드문드문 드러나 있었다.
오래전 석탑이 서 있던 자리.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녀는 눈을 감고,
그 자리에 여전히 무언가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 “내가 너무 늦게 온 건 아닐까…”
그녀는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그날 밤, 혜원은
박재한에게 받은 옛 문서를 다시 꺼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彌屹寺在鳳尾山 — 미흘사는 봉미산에 있다.”
봉미산, 바로 해망산의 옛 이름.
그리고 그 산 중턱, 이곳 자락리.
> “우리는 사라진 게 아니라,
> 흐름 속에 이어진 거야.”
그녀는 속삭이듯 중얼였다.
다음 날 아침,
혜원은 진아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 “나는… 기자였어.
> 전쟁터에 가고, 사람의 절망을 찍고,
> 눈물 많은 글을 썼지.”
> “그런데… 어느 순간 아무것도 의미가 없더라고.
>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알았을 때,
> 이 굴이 떠올랐어.”
> “여기 처음 왔을 때…
> 부처님이 조용히 울고 계셨거든.”
진아는 조용히 혜원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끝은 따뜻했고, 오래된 마음 같았다.
며칠 뒤,
진아는 학교에서 ‘우리 동네 이야기’ 발표를 했다.
제목은
“잃어버린 탑, 그리고 우리”
진아는 또박또박 말했다.
> “탑은 사라졌어요.
> 도둑맞았고, 지금은 아무도 몰라요.”
> “하지만… 그 자리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직 있어요.
> 그게 바로 ‘남은 믿음’이에요.”
> “탑은 없어도, 부처님은 남아 있어요.
> 우리 마음 안에요.”
그날 진아의 발표는
마을 사람들의 SNS에 올라갔고,
멀리 있는 신도들에게도 공유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진아는 혜원에게 말했다.
> “스님,
> 저… 탑을 다시 세우고 싶어요.”
> “진짜 돌로 말고,
> 사람들 마음속에요.”
혜원은 눈을 감고 미소 지었다.
> “네가 바로 이 절의 다음 사람이란 걸
> 부처님도 알고 계셨던 것 같구나.”
진아는 작은 나무 팻말을 만들어
탑골 입구에 꽂았다.
이곳은 잃어버린 탑의 자리입니다.
탑은 사라졌지만,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마음을 모아 탑을 세워주세요.
돌 하나, 기도 하나, 기억 하나가 탑입니다.
그날 밤.
굴 안에서 바라본 바깥엔 별이 떠 있었다.
진아는 법당굴 한편에 앉아 합장하고 있었다.
혜원은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
> “탑이 없다는 게
> 우리가 신이 없다는 뜻은 아니야.”
> “부처님은 늘 우리보다 앞서,
> 조용히 기다리고 계셔.”
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서 그분은
> 늘 웃지 않고 계시는 걸까요?”
혜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침묵은 따뜻했다.
부처님도 말이 없었지만,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제12장. 신성한 터전
여름이 다가왔다.
해망산 숲은 푸르러졌고, 석불사 주변엔 이름 모를 풀꽃들이 피어났다.
진아는 이제 매일 새벽,
굴 앞에 향을 피우고 앉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진 않아도,
그녀의 마음은 언제나 조용히 두 손을 모은 상태였다.
그날 아침, 혜원은 조용히 중마당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손수 만든 연등,
진아가 쓴 나무 안내판,
굴 앞에 놓인 작은 꽃들…
모두가 이 절을 함께 지켜온 시간의 흔적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결심했다.
며칠 뒤,
종단에서 온 공문이 도착했다.
> “석불사—역사 사찰 지정 검토 예정”
공문을 받아든 진아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 “스님, 이젠 진짜 인정받는 절이 되는 거예요?”
> “그보단… 우리가 이 절을 어떻게 기억하느냐가 더 중요하지.”
혜원은 고요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날 밤,
혜원은 진아에게 법복 한 벌을 건넸다.
출가복은 아니었지만,
마음을 담은 옷이었다.
> “이건 네가 입을 자격이 있는 옷이야.
> 이름을 남기지 않아도,
> 이 길을 걷는 사람이 된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니까.”
진아는 조용히 그 옷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 “스님… 저는 석불사의 탑이 될게요.”
여름 축제 날.
석불사 중마당에 사람들이 모였다.
진아는 작은 발표를 했다.
> “탑은 사라졌지만,
> 우리 안에 불심이 있습니다.”
> “이 자리는 단지 옛 절터가 아니라,
> 신성과 기억이 깃든 터전입니다.”
그 말에 누군가 조용히 박수를 쳤고,
중마당엔 이내 따뜻한 기운이 퍼졌다.
그날 석불사는,
탑도 불상도 없이 가장 ‘완전한 절’이 되었다.
여름이 다가왔다.
해망산 숲은 푸르러졌고, 석불사 주변엔 이름 모를 풀꽃들이 피어났다.
진아는 이제 매일 새벽,
굴 앞에 향을 피우고 앉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진 않아도,
그녀의 마음은 언제나 조용히 두 손을 모은 상태였다.
그날 아침, 혜원은 조용히 중마당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손수 만든 연등,
진아가 쓴 나무 안내판,
굴 앞에 놓인 작은 꽃들…
모두가 이 절을 함께 지켜온 시간의 흔적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결심했다.
며칠 뒤,
종단에서 온 공문이 도착했다.
> “석불사—역사 사찰 지정 검토 예정”
공문을 받아든 진아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 “스님, 이젠 진짜 인정받는 절이 되는 거예요?”
> “그보단… 우리가 이 절을 어떻게 기억하느냐가 더 중요하지.”
혜원은 고요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날 밤,
혜원은 진아에게 법복 한 벌을 건넸다.
출가복은 아니었지만,
마음을 담은 옷이었다.
> “이건 네가 입을 자격이 있는 옷이야.
> 이름을 남기지 않아도,
> 이 길을 걷는 사람이 된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니까.”
진아는 조용히 그 옷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 “스님… 저는 석불사의 탑이 될게요.”
여름 축제 날.
석불사 중마당에 사람들이 모였다.
진아는 작은 발표를 했다.
> “탑은 사라졌지만,
> 우리 안에 불심이 있습니다.”
> “이 자리는 단지 옛 절터가 아니라,
> 신성과 기억이 깃든 터전입니다.”
그 말에 누군가 조용히 박수를 쳤고,
중마당엔 이내 따뜻한 기운이 퍼졌다.
그날 석불사는,
탑도 불상도 없이 가장 ‘완전한 절’이 되었다.
에필로그. 탑이 없는 땅, 불심이 깃든 이야기
한 달 뒤.
자락리 입구에는 새 안내석이 세워졌다.
이곳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자락리입니다.
탑이 없고, 불상이 없으며,
굴 안의 부처님은 조용히 앉아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선
사람의 손이 기도였고,
아이의 마음이 불심이었으며,
바람 한 줄기조차도 부처님의 숨결이었습니다.
이곳은 석불사입니다.
신성한 터전입니다.
그날 저녁.
굴 안에 앉은 진아는 조용히 속삭였다.
> “부처님, 저 왔어요.
> 오늘도 제가 지켜드릴게요.”
촛불이 흔들렸다.
그 불빛은 굴 안을 감싸고,
불상 뒤편의 어둠마저 따뜻하게 물들였다.
멀리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
굴 앞에 핀 들꽃,
그리고 고요한 침묵.
석불사는 여전히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더할 수 없이 빛나는 믿음의 터전이었다.
– 完 –
한 달 뒤.
자락리 입구에는 새 안내석이 세워졌다.
이곳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자락리입니다.
탑이 없고, 불상이 없으며,
굴 안의 부처님은 조용히 앉아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선
사람의 손이 기도였고,
아이의 마음이 불심이었으며,
바람 한 줄기조차도 부처님의 숨결이었습니다.
이곳은 석불사입니다.
신성한 터전입니다.
그날 저녁.
굴 안에 앉은 진아는 조용히 속삭였다.
> “부처님, 저 왔어요.
> 오늘도 제가 지켜드릴게요.”
촛불이 흔들렸다.
그 불빛은 굴 안을 감싸고,
불상 뒤편의 어둠마저 따뜻하게 물들였다.
멀리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
굴 앞에 핀 들꽃,
그리고 고요한 침묵.
석불사는 여전히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더할 수 없이 빛나는 믿음의 터전이었다.
– 完 –